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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서 못 느끼는 백패킹의 불편함이 주는 자유

by 빡혀니 2025. 5. 21.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특히 캠핑은 단순한 휴식의 수단을 넘어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다. 포털에 캠핑장만 검색해도 수백 개의 예약 가능한 장소가 뜨고, 유튜브에는 각종 장비 리뷰와 캠핑 요리 영상이 넘쳐난다. 누구나 장비만 갖추면 주말마다 쉽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편리하고 안락한 캠핑이 오히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만들기 시작했다. 캠핑장은 잘 정비된 잔디밭, 전기와 온수가 나오는 시설, 근처의 마트까지 갖추고 있어 불편함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만큼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된 경험이라는 한계도 있다. 마치 도시의 연장선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 많은 이들이 다시금 주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백패킹이다. 최소한의 장비만을 갖추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정해진 목적지 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여행.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물 한 모금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백패킹은 누군가에겐 고된 노동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어떤 것보다 짜릿한 자유를 선물한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길을 택하는 걸까. 이 글에서는 바로 그 불편함이 주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캠핑장에서 못 느끼는 백패킹의 불편함이 주는 자유
캠핑장에서 못 느끼는 백패킹의 불편함이 주는 자유
캠핑장에서 못 느끼는 백패킹의 불편함이 주는 자유
캠핑장에서 못 느끼는 백패킹의 불편함이 주는 자유

 

혼자서 감당하는 불편함 속의 자립심

백패킹은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해야 하는 여행이다. 자동차에 짐을 가득 싣고 떠나는 캠핑과는 달리, 백패킹은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의류, 침낭, 매트, 텐트, 식사도구, 식량, 비상약, 정수기, 헤드랜턴 등...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 그렇게 꾸린 배낭은 보통 10킬로그램에서 많게는 20킬로그램에 이른다.

그 무거운 짐을 메고 산을 오르고, 비포장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체력의 한계가 찾아온다. 물집이 생기고, 숨이 가쁘고, 햇빛은 강하고, 때로는 비까지 내린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며 한 발짝씩 나아가는 동안, 묘한 자신감과 성취감이 생긴다.

캠핑장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직원에게 전화를 걸면 해결된다. 하지만 백패킹에서는 그런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텐트 설치도, 고장 난 장비의 수리도, 조리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때로는 물이 없으면 자연에서 직접 물을 구하고, 정수해야 한다. 밤새 비바람이 불면 텐트를 다듬고, 지형에 따라 바람막이나 타프를 직접 설치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립심을 체득하게 된다. 도시의 일상에서는 보통 누군가의 도움이나 시스템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백패킹에서는 오롯이 나 자신의 판단과 행동으로 하루를 완성해낸다. 이런 경험은 단지 자연 속에서의 생존을 넘어서,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은 일상 속 불확실성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만들어준다.

 

'없음’이 만들어내는 몰입의 깊이

백패킹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안에는 ‘없음’이 주는 특별한 몰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캠핑장에서는 와이파이나 LTE 신호가 빵빵하게 터지고, 조명이 밤을 대체해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진다. 하지만 백패킹에서는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휴대폰은 사진을 찍거나 간단한 기록을 남기는 용도 외에는 쓸 일이 없다. 충전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꺼두기도 한다.

이런 환경은 오히려 머리를 맑게 해준다. 메신저 알림도, 뉴스 속보도, SNS 피드도 없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 오로지 그것만이 지금 나의 전부가 된다. 귀를 기울이면 바람소리, 새소리, 낙엽 밟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지면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고, 해가 뜨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이 단순한 일상의 리듬은 인위적인 시간 감각을 지우고, 본연의 흐름에 몰입하게 만든다.

게다가 백패킹 중에는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길을 걷는 시간 동안 생각이 많아지고, 자연 속에서는 마음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해진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자신 안의 감정이나 욕망, 기억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어떤 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정비하기도 하고, 해답 없던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규칙 없는 자유, 그러나 책임 있는 선택

백패킹은 지정된 장소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야영지를 찾는 방식의 여행이다. 이는 곧 규칙 없는 자유를 의미한다. 텐트를 어디에 치든, 언제 출발하든, 몇 시에 식사하든,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그만큼 더 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온다. 지정된 캠핑장이 아니기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머무는 태도가 필요하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야영, 불 피우기를 자제하거나 화롯대를 활용하는 방식, 쓰레기 되가져오기, 동식물 보호 등은 단순한 에티켓이 아닌 의무가 된다.

누구도 감시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더 성실하게 자연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는 백패커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윤리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임 있는 자유를 실천하며 우리는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자연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공간이다. 백패킹은 불편함 속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는 여정이다. 그 깨달음은 단지 여행의 순간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

 

불편함이 만들어주는 진짜 연결
캠핑장에서의 대화는 종종 편안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흘러간다. 좋은 장비에 대한 정보, 맛있는 음식, 다음에 가볼만한 캠핑장 추천 등, 주로 물질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백패킹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훨씬 더 깊고 진솔하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자연 속에서 비와 바람을 함께 견디며, 그 고생 속에서 마주친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말수가 많지 않아도 좋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 가만히 옆에 앉아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이 그 자체로 깊은 연결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연결도 더욱 깊어진다. 텐트 밖에서 바라본 밤하늘, 쏟아질 듯한 별, 산너머로 떠오르는 해, 고요한 새벽의 숲길... 이런 풍경은 단지 아름다움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한다. 편안한 환경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겸손함과 감동이 백패킹에서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우리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오히려 불편함 속의 단순함이었다는 것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그 환경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깊이 연결해주는 통로였음을.


사람들은 보통 편안함과 자유를 동일시한다. 하지만 진짜 자유는 모든 것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백패킹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를 더 가볍게 만들고, 삶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한다.

도시에서는 놓치기 쉬운 자립심, 몰입, 책임감, 연결감이 백패킹에서는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그것은 불편함이라는 문턱을 넘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캠핑장에서 느낄 수 없는 진짜 자유는 결국 이 불편함 속에 숨겨져 있다. 백패킹은 단지 하나의 여행 방식이 아니라, 더 단순하고 깊이 있는 삶을 배우는 과정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가 얻는 것은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자유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 스스로 책임지는 자유,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자유. 그것이 바로 백패킹의 진짜 매력이며, 우리가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은 이유다.